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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알바트로스 박무강 바리톤 “꿈을 위한 알바트로스 날개짓”

영혼을 살리는 노래하고 싶어

 

(비전21뉴스)  “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하루에 2~3시간 자며 인터넷으로 노래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갈등이 생기더군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이 꿈을 위해 계속 나아가야하는지 접어야하는지 현실적인 고민이 심했습니다. 인테리어 사업을 접고 성악가의 길로 접어드는 것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알바트로스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강한 비바람이 불어 모든 생명체들이 몸을 숨길 때 나타나 자연의 바람에 몸을 맡겨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새. 한달반동안 지구를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며 10년이 넘도록 땅에 내려오지 않을 수도 있다” 제가 가장 전율을 느꼈던 부분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가장 긴 날개를 가지고 오래 나는 것 보다 검은 폭풍을 맞으며 날기 위해 절벽 끝으로 달려가 뛰어 내린다는 거였어요. 큰 몸집으로 뒤뚱거리며 다니느라 날개는 찢기고 더렵혀져 있었겠지만 자신을 믿고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 그걸 보며 나는 한 번도 뛰어 내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용기가 생겼습니다. 나의 꿈도 세월과 함께 찢어지고 더렵혀져 왔지만 비록 시련이 찾아올지라도 꿈을 위해 시련에 몸을 맡기고 비상하리라. . .”

 

알바트로스 박무강 바리톤의 말이다. 수원이 낳은 성악가 박무강은 인테리어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소박하며 권위를 벗어던지고 관중들과 친숙한 성악가로 유명하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매 순간의 주인공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음악회를 할 때 무대 위에서는 내가 주인공이지만 무대 위를 내려오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음악회를 찾아준 한사람, 한사람이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과 오래된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냅니다.”는 그. 이런 그의 모습들이 때로는 너무 격식을 차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그의 소박함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기에 그가 하는 음악회엔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목소리가 워낙 좋아 학창시절부터 노래를 했을 것 같은 박무강 성악가는 뜻밖에도 학창시절과 군복무 시절 웅변을 했다고 한다. 첫 입상도 고교시절 웅변대회 나가서 상을 받았고 군복무 시절에도 웅변을 잘해서 부대에서 휴가를 가장 많이 나갔던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넉넉지 않았던 집안의 7남매 중 막내였던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수원역 주변에서 신문팔이를 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탈줄 아는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수입이 나은 우유 배달을 했다.

 

“우유배달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주말에는 자전거로 쌀장사하는 어머니 쌀 배달 일을 도와줄 수 있었다”고 말하는 박무강 성악가는  “어머니에게 살가운 아들은 아니었지만 속깊은 아들이었던것  같다고 고백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을 하면서 어머니도 본인도 각자의 일이 힘들었기에 서로가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신경통으로 온몸이 아프신 어머니를 위해 안마와 맛사지를 해드리며 서로 의지하는 모자의 깊은 사랑은 깊었다”며 가끔씩 음악회를 할 때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한다.

 

군 입대전 난파합창단 단원이었는데 제대를 하니 수원시립합창단이 되어 있어 다시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에 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다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심부름센터, 판촉물사업, 인쇄업, 건설사업, 인테리 사업 등 성악가와는 너무나 먼 길을 걸었다.

 

 

그랬기에 “노동하고 힘들게 사는 모습만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시리다”는 말을 전했다.

 

긴 파마머리의 범상치 않은 외모, 검정색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 음치인 기자가 감히 성악가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마음을 완전 무장해제 시키는 친근함이 무기인 매력적인 남자. 6일 오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한 성악가 박무강과의 이야기는 시간가는 줄 몰랐다.

 

다음은 알바트로스 박무강 바리톤과의 일문일답이다.

 

Q1.바리톤 박무강이 성악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인테리어사업을 하고 있던 2011년 9월의 마지막 날 그 날도 식당철거를 하고 아내가 운영하던 카페로 왔는데 땀과 먼지에 찌든 제 몰골을 보고 아내가 한마디 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예요? 그동안 처자식 위해서 애썼는데 이제 하고 싶은 것도 하며 사세요 ” 하는데 제가 잠시 멍해졌지요. 나는 무얼하고 싶은가?????

그렇게 그날 밤 영업이 끝난 카페에 앉아 날이 새도록 유트브에 나오는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성악가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Q2. 박무강이 생각하는 ‘성악’에 대한 가치관이나 철학은 무엇인가요?

 

노래는 잘 하는 것을 뽐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통하여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나누며 영혼을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3. 그동안 성악가로서 대중들에게 수많은 감동을 선물했습니다. 그 중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노래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인테리어를 병행하다가 본격적으로 노래에 전념하게 된 것은 이제 3년정도 되었습니다. 그동안 대중 앞에 선 무대가 1000회가 넘었으니 잊지 못할 무대도 많지만 그래도 그중에 제일 소중했던 무대는 2018년 4월 27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의 알바트로스 바리톤 박무강 “비상” 단독 콘서트입니다.

 

940석 공연장에 800여명의 관객이 찾아주셨는데 그리 유명한 성악가도 아닌데 유료로 하는공연에 이렇게 와주셨으니 관객끼리도 서로 놀라고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 날 어떤 분이 대기실에 있는 저에게 이런 문자를 보내주셨어요 “선생님 지금 로비에 사람들이 꽉 찼는데 지금도 계속 모여요 제가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이렇게 서로 감격해주고 사랑하며 응원해 주시니 무대에 서는 성악가로 최고의 순간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4. 전문적인 성악을 전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악가의 길을 걷게 됐는데, 같은 꿈을 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솔직히 왠만한 결심이라면 도전해 보라고 쉽게 권해지지가 않네요 저는 주위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가 많았습니다, 타고난 성량과 음색 감정 표현 등 성악교수님께 레슨를 20여회 받았는데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죠.

 

노래뿐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셨어요.지나고 보니 끝없는 격려와 결심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인테리어와 병행하느라 일을 마치고와서 카페가 문을 닫으면 밤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3년 정도 지나니 노래를 하고 출연료를 받게 되었지요. 그래도 일을 놓을 수 없어서 숱한 갈등을 하며 일을 병행하다 전문 성악가로의 활동에 전념하게 된 것은 이제야 3년정도 되어갑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은 사업을 할 때 같지는 않아요. 아직도 힘들때 마다 갈등이 생기지요. 경제적인 성공이나 단기간에 명예를 얻으려 한다면 걸을 수 없는 길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영혼을 살리는 노래를 하고 싶을 때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리고 얻어지는 성취감은 돈이나 명예로 설명되어 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Q5. 시민들이 ‘성악’을 흥미 있게 접할 방법이 있다면?

 

성악뿐 아니라 클레식에 흥미를 가지고 알아가는데는 시간이 좀 필요한데 우선 많이 들어서 친근한 곡 부터 자주 들으며 접근하는 것이 부드러울 것 같습니다.

 

Q6.닉네임을 알바트로스로 하게된 이유가 있나요 ?

 

젊어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니 모르는 외국 곡들의 외워지지 않는 가사와 같은 노래를 반복하며 스스로 싫증이 나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수시로 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글을 읽는데 가슴에 벅차게 들어오는 글이 있었습니다.

 

“검은 폭풍이 몰려오는 어느 날 모든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 숨을 곳을 찾을 때 알바트로스는 절벽 끝으로 나가서 그 바람을 맞아 절벽을 뛰어내리며 날개를 펴서 한달 반 동안 지구를 한 바퀴를 돌 수 있으며 10년이 넘도록 땅에 내려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전율이 오는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가장 긴 날개를 가지고 오래 나는 것 보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큰 몸집으로 뒤뚱거리며 다니느라 날개는 찢기고 더렵혀져 있었겠지만 자신을 믿고 절벽을 뛰어내리는 것.

 

그래 나의 꿈도 세월과 함께 찢어지고 더렵혀져 왔지만 절벽에서 뛰어 내리는 용기를 잃지 말자고 결심하며 알바트로스라고 스스로 불렀습니다.

 

성악가들은 대부분 가명과 닉네임을 쓰지 않지만 알바트로스는 저에게 끝없이 용기를 주는 상징으로 가슴에 새겼습니다.

 

 

Q7. 2020년 계획과 희망의 메시지 한마디 해주세요.

 

새해 초부터 신종 코로라 바이러스로 모두가 어려운때입니다. 특히 경제적 타격이 심각한데 공연계는 바로 영향이 오지요. 그래서 연초 계획에서 부득불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해마다 진행 하려는 단독콘서트 “비상3”탄과 57회를 넘긴 전국으로 “찾아가는 하우스콘서트”의 70회목표, 공연의 10%기부로 시작한 “힘내라 대한민국” 월 2회 공연의 약속 이행, 그리고 작년 하반기부터 꿈꾸어오는 “알바트로스 박무강 전속 챔버오케스트라 창단“입니다.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무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갸우뚱 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되었습니다. 상반기에 가닥을 잡아서 공연에서 함께하려고 했는데 신종 코로라 바이러스로 수정이 불가피해 졌지만 저에게 최대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세요^^

 

2020년 목표인 새로운 오페라 몇 곡을 무대에 올리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저를 기다리는 팬들께 꼭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너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그동안 받아온 사랑과 배우고 익혀온 것들을 저보다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도 꿈을 펼쳐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려고 합니다. 모두가 힘든 때이지만 우리는 할 수 있고 하면 됩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으로 ~~

”힘내라 대한민국”

 

 

 

한편, 성악가 박무강 바리톤이 2020년 1월 30일 강남스칼라티움에서 열린 미국 캐롤라인대학교(caroline university) 석·박사 과정 수료식에서 명예교수로 위촉됐다.

 

[공동취재]

-경기경제신문 박종명 기자

-경기남부인터넷신문 이차연 기자

-비전21뉴스 정서영 기자

-플러스인뉴스 이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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